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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리버 공국 레너드 조지 캐슬리 두개의 나라 호주속의 또 다른 나라 핫리버 공국 서프라이즈

헛리버 공국 레너드 조지 캐슬리 두개의 나라

호주속의 또 다른 나라 핫리버 공국 서프라이즈

 

 

 

서호주 퍼스(Perth)에서 약 595㎞ 떨어진 해안선 부근에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나라 ‘헛리버 공국(Hutt River Province Principality)’이 있다. 울릉도 만한 크기(약 75㎢) 영토의 소유주이자 이 나라의 군주인 레너드 조지 캐슬리(Leonard George Casley)는 지난 1970년 4월 호주연방으로부터 독립해 나라를 세웠다. 국민이라고는 레너드의 자녀 7명, 손자·손녀 28명, 증손자·증손녀 22명 등 약 50여 명.


1950년 즈음부터 20여 년간 레너드와 그의 가족들은 이곳 농장을 사들여 열심히 꾸려왔다. 하지만 1969년 11월부터 서호주 정부의 밀 쿼터제가 적용되면서 레너드의 농장은 밀 약 46t을 할당받았다. 그러나 레너드 농장의 1년 밀 생산량은 정부로부터 할당받은 양의 500배에 달했다. 이 쿼터대로 밀을 판매한다면 레너드는 1년 동안 수확한 밀을 500년 동안 팔아야 했다. 무엇보다 밀 퀴터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그들이 사용한 트랙터 2대의 대출이자에도 미치지 못했다. 불공평한 쿼터제로 인해 농장을 계속 꾸려 갈 수 없게 된 상황임에도 정부는 아무런 보상도 대책도 없었다. 레너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변호사였던 그는 정부를 상대로 기소하려다 밀 쿼터제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정책임을 발견했다. 때마침 의회에서는 ‘밀 쿼터조례초안’을 상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초안에는 ‘정부가 분배한 밀 쿼터에 대하여 기소해서는 안 된다’ ‘쿼터 때문에 받은 손실은 정부에서 어떤 형식의 보상도 주지 않는다’라는 조례가 포함되어 있었다.

 


레너드는 의회에서 이 초안이 통과되기 전에 정부를 상대로 강력하게 항의하기로 했다. 정부의 정책을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지만 가만히 앉아 쿼터제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결국, 레너드는 영국여왕에게 이 사안을 알리고 호주정부로부터 독립을 요구하기로 했다. 그가 독립을 요구하는 상소를 제기하자 서호주 정부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초안에 따라 서호주정부는 레너드 가족의 토지를 회수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됐다. 상황이 점점 불리해지자, 레너드는 가족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그는 ‘국제법상 자존권(International Law of Self Preservation)’에 ‘만약 계속되는 경제적 손실과 토지를 잃어버릴 충분한 위험이 있다면 자신을 보호하는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규정의 권리를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1970년 4월 21일, 그는 정식으로 정부를 구성해 호주연방으로부터 독립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호주연방과 서호주로부터 독립한 후 레너드의 가족들은 그의 국민이 되었다. 그들은 헛리버성(省, Hutt River Province)이라고 나라를 명명하고 레너드를 추천해 나라의 지도자가 되도록 했다. 동시에 국기를 만들고 정치체제를 공화제로 하는 등 정식으로 국가를 설계했다.

호주연방과 서호주로부터 독립한 후 레너드의 가족들은 그의 국민이 되었다. 그들은 헛리버성(省, Hutt River Province)이라고 나라를 명명하고 레너드를 추천해 나라의 지도자가 되도록 했다. 동시에 국기를 만들고 정치체제를 공화제로 하는 등 정식으로 국가를 설계했다.

 

핫리버 공국 들어가는 문
그런데 독립 후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총리 윌리엄 빌리 맥마흔(William Billy McMahon)은 취임 후 헛리버성 독립을 승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직면한 레너드는 ‘영국 반역법(British Laws of Treason)’에 근거하면 프린스(작은 나라의 군주) 이상 지위에 있는 사람의 직무 수행을 방해하거나 위협하면 반역죄로 기소할 수가 있었기에 나라 명칭을 헛리버성에서 헛리버공국으로 바꾸고 그의 부인을 프린세스(프린스의 부인)로 했다. 그는 웃으면서 “만약 맥마흔이 나의 직무수행을 방해하거나 나라를 위협하면 그는 반역죄로 기소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 취임한 총리 존말콤 프레이저(John Malcolm Fraser) 역시 헛리버 공국을 좋지 않게 생각해 헛리버 공국이 파산하도록 조처하자는 한 의원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이에 레너드가 소송을 준비하자, 호주검찰이 보관하던 헛리버 공국에 대한 중요한 자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소송은 흐지부지해졌지만 레너드는 호주정부가 헛리버 공국에 냉전을 선포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직접 호주에 선전(宣戰)을 포고하기로 하고 아주 빠르게 호주 총독에게 선전포고서를 보냈다.

 

핫리버 공국 화폐

레너드를 비웃던 호주 정부는 이 일로 인해 더는 그를 비웃지 못했다. 3일 후 그는 또 호주 총독에게 휴전성명서를 보냈다. 정식으로 헛리버 공국과 호주정부와의 경계를 확실히 했다.

 

출처-대기원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