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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존 F 케네디 총격 암살범 리 하비 오스왈드 부인 마리나오스왈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존 F 케네디 총격 암살범 리 하비 오스왈드 부인

마리나오스왈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그날의 진실

 


은둔한지 3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한 여인! 그녀는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
디’를 암살한 ‘리 하비 오스왈드’의 아내였는데! 30년 만에 세상에 나와서 그녀가 외
친 말은! 자신의 남편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중심가에서 무개차를 타고 가던 중 총격당했다. 이후 케네디는 그의 암살을 다룬 책만 500여 권에 달할 정도로 숱한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었다. 음모론의 핵심 중 상당수는, 암살범으로 지목된 '외로운 늑대' 리 하비 오스왈드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60% 이상이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린 정부의 조사 결과를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논란에 불을 지핀 사람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었다. 케리는 11월 8일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오스왈드가 혼자 범행했다는 사실에 심각한 의심을 품어왔다. 그가 쿠바나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는지, 당시 정부가 오스왈드의 행적을 끝까지 추적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저격수는 없었고, CIA는 개입돼 있지 않다"며 미국 내부 음모론을 차단했다. 다시 말해 단독 범행이 아닐 가능성은 있지만, 그 배후가 당시 소련이나 쿠바일 수 있다는 얘기다.

 


CNN은 케네디 암살에 관해 30년 넘게 연구해온 데이브 페리(Dave Perry)를 인터뷰했다

페리의 정리는 이렇다. 당시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하려는 케네디의 계획에 반발한 군산복합체가 배후라는 음모론은 가능성이 없다. 왜냐하면 케네디는 그런 상황을 언급했지만 실제로 철수라는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오스왈드가 소련에 거주한 전력 때문에 소련 혹은 쿠바의 배후설이 나오지만 그것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소련이 암살을 지시했다면 이후 오스왈드의 범행 배후로 드러날 가능성이 큰데 이는 곧 전쟁, 특히 핵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에 소련이 그런 멍청한 일을 지시했을 리는 만무했다.

암살이 일어나기 몇 주 전 오스왈드가 멕시코시티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에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그런데 CIA는 이 부분에 대한 조사 내용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오스왈드는 미국과 소련에서 고용한 이중 스파이였을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CIA가 케네디의 암살을 지시했을 확률이 제일 높다는 게 페리의 생각이다.


페리는 암살의 이유로 CIA가 당시 세웠던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제거 계획을 꼽았다. 케네디가 이 계획을 반대하면서 양측 간에 갈등이 심해졌고 케네디 암살까지 이어졌을 거라는 얘기다.


케네디 암살과 관련한 115명의 죽음

여기에는 잇달아 발생한 의문의 죽음들이 한몫했다. 케네디 암살범으로 지목된 오스왈드는 사건 이틀 만에 CIA와 연방수사국(FBI) 정보원 역할을 했던 잭 루비라는 남성에게 살해됐다. 잭 루비마저 구치소에서 석연찮게 사망했다. 케네디 암살 이후 3년 동안 암살 사건의 결정적인 증인 역할을 했을 만한 18명이 모두 사망했다. 6명은 총을 맞았고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해 책으로 출판하려던 기자 1명은 목이 졸려 살해됐다. 교통사고나 자살도 있었고 심지어는 목이 잘린 시체도 나왔다.


한 조사에 따르면 1993년까지 케네디 암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 중 115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은 대중이 케네디 암살이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믿지 않는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다.

음모론이 끊이지 않자 1979년 미국 하원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케네디 암살에 관해 재조사를 벌였다. 조사위원회는 1964년 당시 이른바 '워런 조사위원회'가 밝힌 정부의 공식 입장, 즉 오스왈드에 의한 단독 범행이라는 결론을 뒤집어 "케네디는 음모의 결과로 암살되었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당시 발사된 총알이 세 발이 아닌 네 발일 가능성 등 새로운 결과도 내놓았다. 하지만 위원회는 "또 다른 암살범이 있었는지, 누가 음모를 꾸몄는지는 밝혀낼 수 없었다"고 결론지어 오히려 음모론을 더욱 부각시킨 채 조사를 마무리했다.

 


1963년 11월 22일 해맑은 날씨 속에 미국텍사스주(州) 댈러스 시내 중심가를 무개차를 타고 통과하던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향해 날아든 세 발(?)의 총알을 맞고 암살되고 만다.

그러나 단독 범인으로 알려진 리 하비 오스왈드는 경찰서에서 법원으로 호송되는 도중 잭 루비에 의해 살해되었고 잭 루비마저도 구치소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하면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둘러싼 음모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오스왈드의 부인이었던 마리나오스왈드(72)는 자신의 전 남편이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책임이 있다고 그 당시 밝혔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남편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마피아의 희생양이었다”고 말했다고 영국의 ‘더 미러(Mirror)’가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녀는 “지난 50년 동안 대통령을 암살했다는 죄책감으로 시달려 왔다”며 하지만 “이제는 정부 기관의 공식적인 발표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항상 비밀 요원들이 자신을 감시했으며 지금도 전화 통화를 도청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 미망인이 자신의 남편이었던 암살범 리 하비 오스왈드와 결혼할 당시 착용하였던 결혼반지를 경매에 내어 놓아 익명의 사람에게서 10만 8000달러(1억 1500만 원)에 팔려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