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대화재 네로 황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황제의 진실
3월 15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네로 황제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된다.
역사상 가장 최악의 사건이라 손꼽히는 ‘로마 대화재’! 로마 외곽의
한 기름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는! 곧 로마 전역으로 퍼져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불타오르는
도시를 보며 여유롭게 시를 읊는 한 남자! 그는 바로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였다!
D 60년 오늘(7월 18일)은 ‘로마 대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서력 64년 7월 18일의 일인데, 대형 경기장 관중석 밑에 붙어 있는
상가에서 우연히 발생된 화재가 주변으로 삽시간에 번져간 것이죠.
앞서 말한대로 당시 로마에는 목조 가옥이 많았고, 거기다 이탈리아 반도는
여름이면 아프리카에서 강하고 뜨거운 남서풍이 불어오곤 했습니다.
불은 이 남서풍을 타고 주변으로 삽시간에 번졌고,
명문 귀족들이 사는 팔라티노 언덕을 태워버리고 그 너머의
서민 주거구역을 집어삼켰다
아무튼 화재는 6일 후에 간신히 진압되는 듯 했지만, 강풍 때문에
불씨가 살아나 3일 더 계속 되었다.
이 때 네로 황제는 로마에 있지 않았으며, 자신의 고향인
안티움에 있었다. 그
는 대화재의 소식을 듣고 황망히 로마로 되돌아왔는데,
이 때는 이미 마이케나스 정원과 팔라티노 언덕을 연결하기 위해
그가 공들여 조영한 도무스 트란시토리아가 불길에 휩쓸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황제 자신의 저택까지 불타버린 것이다.
타키투스는 네로 황제의 치세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집 잃은 이재민들을 위해 광장 뿐만
아니라 자기 정원마저도 개방했다"며
"많은 난민들을 위해 긴급 수용 시설을 만들고,
오스티아 항구와 인근 도시로부터 구호 식량을 운송해 왔다"고
그의 구호 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현대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중대한 악평을 그의
'연대기'에 가필했다.
그것은 "황제가 이런 정책을 펼쳐도 그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로마가 불타는 동안 네로가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트로이 멸망의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 풍문 때문"이었다고 서술했다.
이 때 네로 황제는 실제로 한 해 뒤에 열릴 예정이던 고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악기 연주와 노래 부르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평소에 정사는 제쳐두고 허구한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로마 시민들이 이러한 것을
생각해냈을 법도 하다.
로마 대화재는 일주일간 맹렬히 계속되며 모든 길이 통한다는
이 대도시를 쑥밭으로 만들어놓았다.
타키투스는 "여섯째 날이 되자 많은 건물을 허문 덕분에 타오르는
불길을 몰아넣어 마침내 불길이 가라앉았다"며
"로마의 14개 지구 중에서 상하지 않은 것은 4개 지구 뿐"이었다고
서술했다.
네로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후궁인 ‘악녀(惡女)의 대명사’ 아그리피
나와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황제를 독살하자 16세
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초기에는 스승인 세네카와 근위대장 브루투스의 도움을 받아 원로원
존중, 해방노예의 중용, 매관매직 타파 등의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그
리스의 체육과 예술을 로마에 도입해서 문화의 꽃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포악한 성격과 기독교 탄압이 자신의 무덤을 팠죠. 포악한 성
격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그리피나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아들 네로를 유혹해 관계를 갖기도 합
니다. 네로는 어머니를 죽이고 ‘연산군’에 못지않은 폭정을 했다.
셴키에비치의 소설을 뼈대로 한 영화 ‘쿠오바디스’(Quo Vadis)는 네
로의 기독교 탄압을 소재로 했죠. 쿠오바디스는 아시다시피 ‘신이여,
어디로 가나이까?’라는 뜻이다.
아그리피나는 점술가로부터 “아들이 황제가 될 것이고 나중에 당신
을 죽인다”는 얘기를 듣지만 “황제만 된다면…”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혹시 우리가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덜컥
겁이 납니다. 로마의 불길이 우리 자신을 일깨워주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