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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故宅의 봄
‘예전에 살던 집’ 또는 ‘오래된 집’ 고택(故宅) !
2014년 봄.
옛것을 지키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된 집과 그 안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은 서로 닮았다.
고택의 봄은 여유롭지만 부지런히 제 속도를 내며 찾아온다.
올해로 결혼 60주년을 맞은 전남 보성군의 문형식씨 내외의 밥상은
80세 할머니가 직접 뜯은 봄나물의 향기로 싱그럽고,
봄에 들인 새 식구, 병아리들의 재잘거림으로 활기차다.
엄마의 품처럼 늘 열려있는 경남 함양군의 허영오씨 내외 댁은
이웃사촌들의 끊이지 않는 발걸음과 푸짐한 음식들로 늘 풍요롭다.
마을사람들에게 ‘기와집’이라고 불리는 경북 영양군 회곡고택.
명문가의 후손이지만, 농부를 자처하는 집주인들에게
봄은 일손이 바빠지는, 한 해의 서막일 뿐이다.
떠나고 싶지 않고, 떠날 수 없는 옛 집.
그들이 고택에서 보냈던 수 십 번의 봄은 무엇을 남겼고,
그들은 어떤 봄을 기다리고 있을까?
각자의 사연과 방식으로 2014년 봄의 문을 열고 있는
보성, 함양, 영양고택의 세 가족을 만나본다.
▶ 60년의 인연, 110년의 추억. 보성 문형식 가옥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리에서 가장 높은 집.
7대째 내려오는 터에 자리잡은 이 집은 집주인인 문형식(76) 할아버지의 부친의 손으로 110여 년 전 지어졌다. 부부에게는 주춧돌, 장독, 기왓장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보물이고 추억이다.
올해로 결혼 60년을 맞은 문형식 할아버지 내외. 19살에 시집와 남편이 서울로 유학을 갔을 때에도, 자식들을 하나 둘 출가시킬 때에도, 시부모 상을 치를 때도, 안주인 고양덕(80) 할머니는 한결 같이 고택에서 계절을 보내고 맞았다.
첫 아이 낳고 시부모 사랑받을 때가 인생의 봄날이었다는 고양덕 할머니. 할머니가 아직도 시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짓는 사연은 무엇일까? 부부가 지닌 수많은 봄의 추억들을 들어본다.
▶ 대문이 항상 열려있는 집, 함양 허영오 가옥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리. 하하호호 담장을 넘는 웃음소리를 따라 들어가보면 열려있는 대문 안으로 신나는 윷놀이 한판을 구경할 수 있다. 50년 우정을 자랑하는 이웃들과 함께 활기찬 봄을 맞이하고 있는 허영오(72) 이금식(70) 부부. 파전부터 수제비, 할머니표 가마솥 빵까지. 맛있는 음식들과 이야기가 있는 이곳의 대문은 항상 열려있다.
진흙 밭 속에서 귀한 연꽃을 얻어내듯, 부부는 삶의 지혜로 오래된 것들을 때로는 쓰임새를 바꾸기도 하며 수명을 연장시킨다. 그래서 이 고택에서는 40년 넘은 재봉틀, 깨진 장독 뚜껑들이 새 것보다 오히려 귀한 대접을 받는다. 할아버지가 50년 가깝게 운영하고 있는 마을의 정미소에서는 오늘도 석박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새싹이 돋는 매순간마다 봄을 맞이한다는 허영오씨 내외. 낡고 오래된 것 속에서 매순간 소생하는 봄의 에너지를 개평마을의 고택에서 직접 느껴보자.
▶ 420번째 찾아온 봄, 영양 회곡 고택
경상북도 영양군 기포리에는 420년 역사를 자랑하는 회곡 고택이 있다. 명망 높은 선비의 자손으로, 수십 명의 식솔들을 묵묵히 뒤치다꺼리했던 금은숙씨(61). 90세를 바라보는 시어머니는 동병상련할 수 있는 동지이기도 하다.
조상들이 물려준 유품들을 정리하고, 고택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붐을 시작한 회곡선생의 11대 후손 권오선(67)씨와 고추밭을 돌아보느라 여념이 없는 금은숙씨. 유학자의 후손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지키며 살아왔던 이들에게 봄은 땀 흘려 땅을 파는 노동의 계절이다.
농부의 투박한 손으로 길러내고 있는 파릇한 고추 모종과 피어나는 작약 봉오리들. 봄을 맞아 새롭게 묘목한 호두나무까지! 회곡 고택의 봄 풍경을 담았다.
회곡 고택은 일월산 기슭에 자리잡은 이 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 회곡 권춘란(1539∼1617)이 노년에 살던 곳이다. 권춘란은 아들이 없어 동생 춘계의 맏아들을 양자로 삼았는데, 이 집은 권춘계가 임진왜란 이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침과 사당이 남아 있으며, 사당은 원래 정침의 오른쪽 뒤에 있던 것을 영조 14년(173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정침은 앞면 5칸·옆면 5칸의 ㅁ자형이며, 처음 지을 당시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사당 안에는『회곡선생문집』과 교지·호패·공신록·행장기 등이 보관되어 있다.
회곡 고택은 시도민속문화제 79호로 1988년 9월23일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