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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성유보 이사장 타계 성유보 급성 심근경색

성유보 이사장 타계 성유보 급성 심근경색

 

 

 

 

햔겨레 초대 편집위원장과 우리겨레하나되기 운동본부 이사장, 희망래일 이사장으로 알려진

성유보 이사장이 어제 오추 5시 경기도 일산병원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향년 71세로

타계했다.

성유보 이사장은 지난 3일 지병으로 인한 합병증 수술을 받고 입원중이였다고 한다.

성유보 이사장은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자유언론 수호와 언론민주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언론시민단체들은 9일 낮 회의를 열어 빈소를 비롯해 장례 절차를 확정할 예정이다.

성유보 이사장은 1968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를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서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여를 했다가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을 했다.



일제 말기인 1943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성유보 이사장은 지난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정보부 등 정보기관의 정보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던 때였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이 언론 통폐합과 함께 '긴급조치'로 언론을 통제했다. 성유보 이사장 등 <동아일보> 젊은 기자들은 노조를 결성해,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1974년 10월 23일 중앙정보부가 '서울대 농대생의 데모'를 다룬 기사를 빌미로 <동아일보> 송건호 편집국장 등 간부들을 연행하자,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기자·프로듀서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다. 정권은 그해 12월 '광고 탄압'을 가했고, 이듬해 3월 성유보 이사장 등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 기자·프로듀서들이 대거 해직됐다. 이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이후 성유보 이사장은 언론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를 맡아 월간 <말>을 창간했다. 1986년에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 등을 맡는 등 민주화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1988년 <한겨레>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고,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을 맡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 남북방송교류 추진위원장, 제17대 대통령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 등을 역임했다. 2013년에는 희망래일 이사장, 2014년에는 사단법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을 맡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참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성유보 이사장은 우리나라 언론에 자유를 위해서 정치계와 맞서 싸운

사람으로 알려진다. 여러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진정한 언론이 무엇이고 언론이 어떤일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몸으로 보여줬던 이시대의 자랑스러운 언론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분이 이렇게 먼저 가신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