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3일 8월의 크리스마스 비바 파파 프란치스코 교황 노란 리본 의미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이란 없다
8월의 크리스마스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일어나라 비추어라
가난한 이들의 친구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 5일 동안 한국을 방문해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깊은 울림을 주고 간 여정,
그리고 그에게 열광하고 위로받은 사람들과 함께한
3일의 기록이다
■ 아프고 낮은 사람들을 향한 위로의 여정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난히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가지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 최초의 교황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사용한 최초의 교황, 교황궁이 아닌 일반 사제들의 게스트하우스에 살고 버스와 소형차를 타고 다니며 이교도인과 여성의 발을 직접 씻겨준 교황 프란치스코.
그가 지난 8월 14일, 한국 땅을 밟았다. 이번 방한은 취임 이후 세 번째 해외 순방이자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의 방문이다. 25년 만에 교황을 맞이하게 된 대한민국, 그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로 행사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비바 파파’를 외치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텐트에서 자며 기다린 3대 대가족부터 생애 마지막 기회라며 아픈 몸을 이끌고 나온 노부부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교황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피곤함도 잊은 채 모여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진정한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 항상 낮은 자세로 소외된 자에게 향했던 교황의 발걸음을 따라간 72시간이다.
교황님이 오신다고 그래서 이틀 동안 못 잤어요, 잠을.
교황님은 겸손하시고 권위적이지 않으시고 너무 따뜻하시고
그냥 할아버지같은 그런 푸근함. 그런 분 같으세요.
진장욱_38세
■ 프란치스코 교황, 노란 리본을 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일정 중 일반인들을 처음 만난 대전 월드컵 경기장. 이곳에 온 많은 사람들은 기쁨과 기대감으로 좌석을 채웠지만 한 쪽에는 침울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세월호 희생자 유족과 생존 학생들이다. 그 중에는 6kg 십자가를 메고 900km 도보순례를 한 故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故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도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면담 자리를 마련해,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광화문에서는 故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33일째 단식농성을 하며 교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기적은 이루어졌다.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 중,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례적으로 차를 멈추고 내려서 천천히 김영오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유민아빠가 직접 써내려간 편지를 소중하게 받아주었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이란 없다’고 말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노란 리본을 달고 세월호 유족들을 보듬어주었다.
우리는 아빠로서 죄인이거든요.
지켜주지 못해서 죄인이고 왜 죽었는지 밝혀내지 못해서 또 죄인이 되고...
그래서 우리 죄인들 끌어안아 달라고 호소하고 싶어요
유민이 아빠, 김영오_47세
■ 교황이 남기고 간 선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동안 세월호 유족뿐만 아니라 꽃동네 장애인, 쌍용차 해고자, 위안부 할머니 등 이 시대 상처받고 고통 받는 자들을 만났다. 꽃동네를 방문한 교황은 장애인들의 눈높이에서 입을 맞추고 축복해주었다.
마지막 명동성당 미사가 있던 날 새벽.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는 이제야 수십 년의 한이 풀리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따뜻한 손길로 상처 입은 자들에게 위로를 건네 준 프란치스코 교황. 혼란의 시대, 그가 남기고 간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들은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 마음속에 평생의 선물로 남았다.
평생 동안 우리 몸, 가슴 속에는 한이 맺혔거든
교황님이 오셨기 때문에 그 한을 다 풀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_8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