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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 신부 복음자리 딸기쨈 누룩공동체

정일우 신부 복음자리 딸기쨈 누룩공동체

 

 

파란 눈의 신부로 잘 알려진 정일우 신부가 지난 2일 향년 79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정일우 신부는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1963년 실습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4년 뒤 고등학교 은사인 고(故) 바실 프라이스 신부(2004년 선종)의 영향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강대 설립 주역인 프라이스 신부는 1966년 국내 최초로 노동문제 연구소를 열어 34년 동안

노동자들에게 노동법과 노조 활동, 단체교섭 방법 등을 가르친 국내 노동 운동의 선구자다.

정일우 신부는 학생들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잡혀 들어간 것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에 눈을 돌리게 됐으며, 이후 개발 논리에 밀려 비참하게 살아가는

빈민들의 삶을 접한 뒤 청계천과 양평동 판자촌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빈민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곳곳에서 철거작업이 진행되자 상계동과 목동 등지에서

 철거민을 도왔고 이들의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잼'을 만들어 판매했다.

1986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동지 고(故) 제정구 전 의원과

공동 수상했다.

정일우 신부는 1998년 귀화한 뒤 충북 괴산에 농촌 청년 자립을 돕기 위한 누룩공동체를

 만들어 농촌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2004년 70세 생일을 앞두고 단식 도중 쓰러졌다가 이듬해 중풍으로 다시 쓰러진 뒤

 모든 활동을 접고 요양해 왔다.

 


정일우 신부가 속한 예수회 한국관구는 "평생을 통해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시고 하느님의 품에 안긴 정일우 신부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정일우 신부의 빈소는 성모병원 영안실이며, 장례미사는 4일 오전 8시 30분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