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모시 합죽선 화문석 방연옥 모시장인 김동식 선자장 박윤환 리얼다큐 숨 123회
한산모시 합죽선 화문석 방연옥 모시장인 김동식 선자장 박윤환 리얼다큐 숨 123회
올여름 이른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벌써부터 한낮의 더위와 열대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기 위해 시원한 음식을 먹고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저마다 시원한 여름을 보내는 사람들-
하지만 그마저도 없었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이 ‘찌는 듯한 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조상들이 지켜온 삶의 지혜 속, 무더위를 이길 해답을 만나기 위해 MBN ‘리얼다큐 숨’이 찾아간다.
조선 시대 상류층의 여름철 필수품이자 중국의 진상품으로 빠지지 않는 품목이었던 ‘모시’!
그중에서도 ‘한산모시’는 백옥처럼 하얗고 명주실보다 얇은 데다 마치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워
예로부터 선조들에게 여름옷으로 사랑받아 왔으며, 우리나라 모시의 대명사로 불려 왔다.
그러나 그 시원한 모시를 만들어내기 위해 한산의 아낙들은 그 어떤 여름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야 했다.
기계는 절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얇고 고른 모시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한산의 아낙들은 태모시를 째고·삼고·날고·매고·짜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무수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밥그릇 하나에 모시 한 필이 들어간다.’고 할 만큼
굵기가 일정하고 결이 고운 모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모시를 위한 한산아낙들의 노력 덕분에 한산모시 짜기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로 등재됐다.
하지만 워낙에 제작 과정이 고되고 힘들어 요즘은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조차
찾기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산모시의 명맥을 이어나가며 전통을 지키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인 방연옥 모시 장인이다.
이빨로 한 올의 실을 만들어내는 모시 째기를 하느라 앞니가 닳기도 하고,
모시를 길게 이어내는 과정에서 허벅지가 쓸려 피가 나기도 하지만,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그녀는 지금도 전통베틀을 고수하여 올이 곱고 탄탄한 모시를 짜고 있다.
통풍성, 흡습성이 뛰어나고, 천연 그대로의 섬유이기에 인체에 해가 없으며,
질기고 내구성이 강해 수명이 15년 이상 된다는 한산 모시.
시원한 모시옷 한 벌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인의 뜨거운 열정과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한산 모시의 우수함을 들여다본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없던 시절, 우리 조상들이 시원한 바람을 즐기기 위해 사용했던 ‘부채’!
그중에서도 대나무를 붙여 만든 고풍스러운 ‘합죽선’은 사대부들의 기개와 품위를 상징하고
그 모양과 길이에 따라 지위를 나타내기도 하며 때로는 호신용으로도 사용될 만큼 없어선
안 될 필수품이었다. 특히 이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한지의 질이 가장 우수한 전주지역에서는
합죽선을 전문으로 만드는 ‘선자방’이라는 관청을 두고 임금에게 좋은 합죽선을 진상할 만큼
그 명성이 대단했다는데...
바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인 김동식 선자장.
그의 집안은 외증조부 때부터 대대로 합죽선을 만드는 집안으로,
그는 대를 이어 14세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57년간 합죽선을 만들어온 합죽선 장인이다.
질 좋은 대나무를 고르는 일부터 두꺼운 대나무를 얇게 깎고 깎아 0.1mm도 채 되지 않는
가느다란 부챗살을 완성하고 민어의 부레를 삶아 만든 풀인 어교를 사용해 부챗살을 붙이고
다듬고,
한지를 바르는 등 하나의 합죽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백 가지가 넘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
워낙 공정이 많고 까다롭기에 6방으로 나누어 6명이 함께 만들던 부채는
이제는 혼자 도맡아 할 수밖에 없다는 김동식 장인.
전통 합죽선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그는 합죽선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는 아들과 함께
여전히 무더위 속에서 대나무를 깎아내고 있다.
평소에 부채를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바닥 지압 점을 고루 눌러 건강에도 좋다는 합죽선.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여름철 필수품, 합죽선의 시원한 매력에 빠져보자.
무더운 여름 선조들의 열대야를 식혀주던 전통 돗자리, ‘화문석’!
그중에서도 재래 돗자리 중 최고급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는 강화 화문석은
여름에는 통풍 효과가 좋고 겨울에는 냉기를 흡수하여 사계절 내내 조상들의 방을 지켰다.
또 오래 쓰더라도 윤기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질겨서 잘 부스러지지 않기에
신라 시대에는 화문석의 생산을 담당하던 관청이 따로 있었으며,
고려 시대부터 중국 수출품으로도 그 명성이 자자했다는데...
화문석은 봄이면 그 재료가 되는 왕골 씨를 뿌려 성인 남자 키만큼 자라는 7~8월이 되면
수확하여,
한창 더운 여름철에야 훑고, 말리고, 염색하고, 짜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옷감을 짜듯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엮어야 하기에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도 1장을 완성하는데
보름에서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
그래서 예로부터 화문석 한 장에는 60만 번의 손길이 간다는 말도 있을 정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지만, 전통 화문석을 지키기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화문석 사랑에 빠진 이들이 있다.
강화도에서 화문석을 짜는 어머니와 화문석 감정 장인인 아버지 아래 자란 강화 청년 박윤환씨는
화문석 공방을 만들고 화문석 짜기를 그만둔 장인들을 모아 전통 방식의 화문석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화문석을 알리기 위해 최초의 화문석 디자이너와 함께
화문석 왕골 염색 색상을 체계화하고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새로운 화문석 문양을 만들어내는
등 화문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화문석 짜는 작업이 너무 고되 골병틀이라 불리는 화문석 자리틀을 젊은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새롭게 다잡은 화문석 장인들과, 예전엔 값비싼 혼수품이었던 화문석 한 장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
3-40년 된 오래된 화문석을 수선하며 화문석 제 2의 전성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
꽃 화(花), 무늬 문(紋), 자리 석(席). 꽃무늬를 놓은 자리로,
예로부터 꽃돗자리라 불린 화문석.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화문석 지킴이를 만나본다.
부채, 모시, 화문석으로 더위를 이겨냈던 선조들의 전통 여름나기와
조상들의 지혜를 현대까지 이어가고 있는 장인들의 뜨겁고도 치열한 현장,
그들의 이야기를 8월 7일 목요일 밤 9시 40분, MBN 리얼 다큐 숨에서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