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북정마을 종점가게 부산 범일동 매축지마을 이발관 경마이발관 유만갑 다큐공감 53회
성북동 북정마을 종점가게 부산 범일동 매축지마을 이발관
경마이발관 유만갑 다큐공감 53회
사랑이 꽃피는 마을
오래 된 기억 속, 우리에게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울고 웃어줄 수 있는 이웃과 사람들이 있었다.
그 때 우리는 동네 사랑방에서
집안의 대소사부터 세상 돌아가는 일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며 형제 못지않은 정情을 쌓았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서로 나누고 위할 줄 아는
그런 공간,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60, 70년대의 분위기가 보존된 지역인 서울 성북동 북정마을
버스 종점 앞 가게 주인 고현선(60)씨에게 손님은
모두 친구, 형님, 어머니고 일손을 보태주는 이웃들이다.
도시의 섬처럼 시간이 멈춘 듯한 부산 범일동 매축지마을
마을 한가운데 47년 된 이발관 주인 유만갑(68)씨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40년 단골의 머리칼을 다듬어주며
마을의 ‘유 반장’ 역할을 해낸다.
소탈한 웃음소리와 이웃을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이
들리고 보이는, 사랑이 꽃피는 마을!
우리가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정겨운 이웃들의 모습을 찾아가본다.
▶ 온 이웃이 형제이고, 가족인 공간.
서울 성북구 북정마을 종점가게
서울 한가운데 이런 마을이 있었나 싶게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살아있는 성북구의 북정마을.
온 마을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북적북적 거렸다는 소리를 본 따서
‘북정마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는 유래가 있을 만큼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훤히 아는 주민들
마을버스에서, 정류장에서, 텃밭에서 이들은 마주쳤다 하면 이야기꽃을 피운다.
자식들은 어떻게 사는지, 병원은 잘 다녀왔는지, 잔치는 잘 끝냈는지...
가족처럼 서로를 챙긴다.
마을버스 종점 앞 40년 된 가게는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아 20년째 가게를 운영하는 고현선(60)씨는
이웃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정을 나누는 일상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나만을 위해서,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서로 나누고 보듬는 게 사람 사는 재미라는 이웃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부자인 이들이 사는 곳,
사람냄새 나는, 북정마을로 찾아가보자.
▶ 투박하지만 세월의 정이 느껴지는 마을 사랑방.
부산 매축지마을 이발관
일제강점기 때 바다를 메워 만든 땅에 들어선 범일동 매축지마을.
해방 후 귀환동포들이 터를 잡았고 한국전쟁 이후에
피란민들이 유입돼 형성된 마을이다.
고단한 삶이지만 이웃 간의 훈훈한 정이 있어 살 만한 곳,
그 중심에는 47년 된 이발관이 있다.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가위를 잡기 시작한 유만갑(68)씨,
이웃 도시로 이사를 가도 손님들은 그의 솜씨와 입담을 잊지 못해 이발관을 찾는다.
머리 깎으러 온 손님보다 놀러 온 이웃들이 더 많은 이발관.
이곳은 마을의 경비실이자 파출소, 사랑방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일 나간 이웃들을 대신해 택배를 받아주고, 시도 때도 없이 들르는 이웃들에게
커피와 편안한 공간도 제공한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이발관 주인 유만갑씨는 자식이자 살가운 말벗이다.
투박하지만 그들만의 낭만과 정情이 흐르는
매축지마을의 중심, 오래된 이발관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가진 것을 나누고 어려울 때 진심으로 손을 내밀어주는
사랑이 넘치는 공간!
서로에게 힘이 돼 주는 사람들,
도심 속 온기가 느껴지는 그 곳으로 향한다.
부산항 제5부두 맞은편에 있는 동구 범일5동 매축지(埋築地) 마을.
일제 때 부산항을 확장하면서 우묵한 곳을 메워서 생긴 마을이다.
해방 후 마을이 형성된 뒤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1990년 재개발지역으로 결정되면서 지금은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보수나 건축이 제한되어 일제 때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심 속 오지다.
이 마을 한복판에 있는 ‘경마이발관’. 면적 15㎡의 작은 이발관은 주인 유만갑(67)씨가
47년째 운영하고 있다.
한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다 보니 머리만 깎는 곳이 아니라 마을 사회복지관이고 경비실,
치안센터 역할까지 하고 있다.
집 위치를 찾는 사람, 수령인이 집에 없어 물건을 맡기려는 택배기사,
100원짜리 고스톱판을 벌이는 오갈 데 없는 어르신들이 이발관을 자주 찾는다.
마을 주민들은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이발소에 신고한다.
몇 년 전 이 마을에서 사회복지사를 사칭해 어르신에게 안마를 해준 뒤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먹이고 금반지를 빼가는 사건이 발생 한 후부터다.
이발관 주인 유씨는 경남 의령에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동구 초량동으로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어릴 때 나무에서 떨어져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쳐 군대를 안 가게 된 그는 15살 때부터
이발소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부두 근처라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많았는데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의 모습이 좋아 보여 배웠어요.”
20살 때 ‘경마이발관’을 열었다.
1998년까지는 5~6명의 이발사를 둘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발관 이름 ‘경마’는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남자들의 머리기름 ‘포마드’ 상표에서 따왔다.
1990년대 생기기 시작한 퇴폐 이발소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손님들의 발길을
미용실로 돌리게 했다. 한번 간 손님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갈수록 손님이 줄어 지금은 하루 3~5명 정도다.
그래도 단골손님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찾고 있다.
40년 단골인 배구택(70·동구 범일5동)씨는 “경로당은 할머니들만 있어 불편해.
이곳은 남자 친구가 많고 마음이 편해서 놀이터처럼 자주 온다”고 말했다.
자주 오던 손님이 한동안 안 보이면 나중에 숨진 것을 알 정도로
나이 많은 손님이 많다.
이발소 한구석에 할아버지가 어린이의 머리를 깎아주는 연필 스케치 그림이 걸려 있다.
유 사장은 “나도 나이 들어서 저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걸어둔 그림”이라고 말했다.
이발 가격은 5500원. 1999년 걸어둔 가격표다.
이발하고 샴푸, 면도, 드라이까지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