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공원 다큐공감 서소문 임경명 신부 정약용가 정약종 정하상
서소문 공원 다큐공감 서소문 임경명 신부
정약용가 정약종 정하상
"서소문, 잃어버린 100년의 역사"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제는 작은 표지석으로만 남아있는 서소문.
그런데 이 서소문이 피로 얼룩진 역사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서울의 4소문 중의 하나였던 서소문은 조선시대에 중죄인을 처형하던 형장이었다. 또한 이곳은 44명의 순교 성인들이 배출된 우리나라 최대의 천주교 순교성지이기도 한데... 조선 후기 잃어버린 100년의 역사를 되짚어보기 위해 사라져버린 서소문으로 역사여행을 떠난다.
▶프랑스에서 온 사제들과 함께 하는 서소문으로의 역사여행
한국에 온 지 올해로 40년이 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임경명 신부. 프랑스인이지만 사제 인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낸 그가 서울 도심 속으로 역사탐방에 나선다. 몇 달 전 새로 부임한 베트남 출신의 유덕신 신부와 함께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배우고 되짚어보기 위한 것. 서소문 밖 처형장이 있던 곳과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약현성당 등 조선 후기 천주교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들을 방문한 이들의 소감은 어떨까?
▶서소문에서 이뤄진 피의 순교
서소문 공원의 순교자 현양탑에는 서소문에서 처형된 순교 성인 44명과 하느님의 종 2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중에는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과 조카인 정하상도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다산 정약용 家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았다. 그 중 정약종 가족은 부부와 정하상을 비롯한 세 자녀 모두가 서소문 일대에서 처형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족보에서도 그 이름마저 지워져야 했다. 정약용 家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역사의 중심에 서소문이 있는 것이다.
▶흔들리는 조선사회, 천주교를 만나다
조선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천주교를 도입한 나라다. 진보적인 실학자 등 지식인들에 의해 학문으로 들여온 천주학이 점차 신앙으로 받아들여진 건 18세기 후반 조선 사회의 요청이었다. 신분제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지배계층의 문제가 속속 드러나면서 많은 사람들은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꿈꿨다. 그들에게 천주교는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길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기록한 박해의 역사
사회 변혁적 성격을 띤 천주교는 집권층에겐 위협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정조 사후 60여년에 걸쳐서 대대적인 탄압과 박해가 이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박해 당시의 상황을 세세하게 기록한 이국적인 기록들이 남아있다. 당시 파견됐던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작성되고 보관된 것. 그 기록들을 통해 복원한 역사는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의 한 단면이다.
▶잃어버린 역사의 복원과 교황의 방한
일제 강점과 더불어 서소문이 철거되면서 서소문의 역사는 잊혀졌다. 하지만 사라진 서소문은 1984년 극적으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식으로 서소문에서 순교한 사람들 중 44명이 성인이 되었던 것. 그리고 30년 만에 다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다. 서소문을 비롯한 광화문 일대가 시복식 장소로 정해졌고, 각계에서도 서소문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서소문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되새겨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국내 최대 순교성지인 서을 서소문공원을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에도탄력이 붙었다.
서울 중구는 내년 8월까지 실시설계를 마치고 착공해 2017년 9월 완공할 계획이다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6일 광화문에서 시복미사를 거행하기에 앞서 서소문 공원을 찾는다. 시복미사는 천주교 신자 중 거룩한 삶을 살거나 순교를 한 사람을 성인(聖人)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행사다.
이번 시복미사에서 복자로 추대되는 124위 중 27위가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처형된 순교자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이들을 위해 5분 정도 짧게 참배하고 광화문으로 시복미사를 하러 이동한다.
성도 500명이 행사 당일 서소문공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을 계획이다. 성도들은 교황이 오기 1시간 전부터 모여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기도한다.
서소문 순교성지의 관할본당인 중림동 약현성당의 이준성 주임신부(47)는 "교황님은 시복대상자들이 처형된 장소에서 참배하시고 순교자들이 끌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 죄인으로 판결받은 장소인 형조 앞 광화문 광장으로 간다" 며 "순교자들이 죄인이 아니라 복되신 분이라고 선포해 200여년 전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소문 순교성지는 서소문 밖 네거리로 불리던 곳으로 조선시대의 공식 처형장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 때까지 100여 명의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서소문 순교성지 순교자 가운데 44위가 1984년 시성식 때 성인으로 선포됐다. 단일 순교지로는 성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다.